한국전쟁이 끝나고 3년이 지난 1956년 10월.
북한 황해도 용연군 해안가에서 동생 4명과 살고 있던 19살 김주삼 군 집에 낯선 복장을 한 군인들이 들이닥쳤습니다.
남측에서 침투시킨 북파공작원들이었습니다.
[김주삼 / 북파공작원 납치 피해자 : 동생들하고 자고 있는데 국군이 들어와서 동생들은 어리니깐 관두고 나만 이제 크니깐 나만 데리고 갔지. 총 들고 들어왔어요.]
목선에 태워져 백령도와 인천을 거쳐 도착한 곳은 서울 오류동의 공군 25 첩보대.
한국전쟁 중에 창설된 곳인데, 서해 5도를 통해 공작원을 북한으로 침투시키는 임무를 맡았던 부대였습니다.
부대 공작원들은 김 씨에게 황해도 주변의 큰 다리를 포함한 지형 정보와 인민군 부대 위치 등을 집요하게 캐물었습니다.
무려 1년 동안 진행된 조사가 끝난 뒤에도 김 씨는 다시 3년 동안 부대에서 보수도 없이 잡일을 하거나 차량을 고치면서 노역해야 했습니다.
[임중철 / 당시 부대 근무·목격자 : 북쪽에다 대고 철망을 붙잡고 소리를 안 내고 우는 거야. 그걸 내가 여러 번 봤어요.]
1961년, 4년여 만에 부대 밖을 나서는 24살 김 씨에게 주어진 건 대한민국 국적과 부대 주소로 된 새 호적 등본.
낯선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해야 했지만,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의심받았고, 평생 족쇄와 다름없는 감시가 이어졌습니다.
[김주삼 / 북파공작원 납치 피해자 : 처음에는 하우스에 살았어요. 거기다 집을 짓고 살았는데, 어떤 형사는 신발을 신고, 방에 들어와서 다 훑어보고 그랬거든.]
김 씨처럼 북에서 남으로, 또는 남에서 북으로 강제납치된 주민들이 다수 있다는 증언이나 논문이 있긴 하지만, 그 규모가 제대로 파악된 적은 없습니다.
[이강혁 / 김주삼 씨 법률대리인 : (남북이) 상호 침투해서 약취라든가 공작들을 벌이는 사례는 있었을 것으로 짐작이 되고….]
김 씨는 60여 년이 훌쩍 지난 재작년에야 국가를 상대로 2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이 납치됐다는 증거를 제출하라고 요구하자 진실화해위원회를 찾아 진실 규명을 요청했습니다.
진실화해위는 1년 3개월에 걸친 조사 과정에서 국방부 등을 통해 북파공작원 출신 군인이 국가에 제출한 서면 등을 확보한 결과 사실관계가 확인됐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어 국가의 사과와 김 씨에 대한 명예 회복, 북한 가족...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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